박민성, 상이병 뿌리

박민성, 상이병 뿌리

여느 때처럼 나는 학교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반에서 조용히 있던 아이가 그네에 혼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늦은 시간임에도 아이가 홀로 있는 것이 눈에 걸려 가까이 가보았다.

"현진아, 여기서 뭐하니?"

"그냥 앉아 있어요"

"집은 안 들어 갈 거야? 시간이 많이 늦었어."

내가 계속 질문을 하자 현진이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나는 대답을 회피하는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집에 무슨일 있니?"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살짝 당황 한 것 같았지만 끝내 답하지 않았다.

"그래.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하면 선생님 꼭 찾아와. 알겠지? 그리고 집에 일찍 들어가. 밖에 있으면 위험해."

그러곤 나는 자리를 옮기고 차를 탔다.

'별 일 없겠지...?'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갔다. 집에서 조금 쉬다가 아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별일 없겠지' 하고 그대로 넘겼다.

다음 날. 난 평소처럼 학교에 갔고, 평소처럼 반에 들어가서 출석을 부르는데...

"김현진"

"......"

"김현진?"

"학교 아직 안 온 것 같아요"

"그래?"

나는 그 때까지도 별 일 없겠지 하고 넘겼다.

학교가 끝나도록 현진이는 오지 않았고,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현진이 주소를 찾아 찾아가게 되었다.

현진이가 사는 동네는 전체적으로 허름하고,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계단을 올라서 현진이 집에 도착했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저기 누구 없나요?"

그러자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누구세요?"

"아... 저 현진이 담임선생님인데요. 오늘 현진이가 학교를 안 와서요. 혹시 안에 있나요?"

잠시 정적이 흐르다...

"오늘 애가 아파서 안 보냈습니다. 낫는 대로 보내겠습니다."

"아, 그럼 현진이 잠시만 볼 수 있을까요?"

"애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러니 그냥 가시죠."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이 돌아왔다. 난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별 일 아니어야 하는데...'

그 다음날 학교에 갔다. 여전히 현진이는 오지 않았다.

나는 '몸이 아픈거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겼다.

한창 수업을 하던 중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누구세요?"

"저희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네? 무슨 일로..."

그때 내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설마...'

"잠깐 이야기 좀 가능할까요?"

"네..."

나는 긴장한 채로 밖으로 나섰다.

"어젯밤에 아동 학대로 인해서 이 반 학생이 다쳤습니다."

'아... 맞구나.'

아동학대 신고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 일로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네..."

몇 가지 질문이 오가고 그렇게 그들은 돌아갔다.

나는 반으로 돌아왔지만,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수업이 끝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그때 조금 더 신경을 써볼걸...'

수많은 생각과 후회가 내 머릿속을 채웠고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진정이 될 때쯤...

"퇴근 안 하세요?"

퇴근하시던 다른 선생님이 물었다.

"아... 이제 할려구요."

난 황급히 짐을 챙겨 집으로 갔다.

집에서도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때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뭐해?"

"그냥 생각 중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안 좋은 일이야?"

"아니... 그냥 좀..."

"나와. 이야기 좀 하자."

나는 그렇게 집 앞 호프집으로 나섰다. 가게에 들어서니 친구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아뒀었다.

"야, 여기야"

내가 자리에 앉자 나에게 바로 질문을 했다.

"무슨 일인데? 왜그리 우울해?"

"그게... 우리반 학생 일인데.."

난 뜸을 들이면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 힘들겠네..."

"응... 내가 괜한 말을 해서 더 힘들 게 한 거 같기도 하고.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니야 넌 도울려고 했었던 거였잖아"

"하지만..."

"그러지 말고 너가 그 애를 도와줘. 상담도 하고 보살펴주고. 너도 예전에 힘들었던 적 있잖아. 그때 경험을 살려서 도주도와주는 거지."

친구의 그 말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에게 해방구라도 된 듯 그 말을 듣자마자 '아 그럼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날의 힘든 일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으며 그날을 즐겁게 즐겼다.

그 다음날 나는 현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복도를 따라 쭉 가서 8인실 병실에 들어갔다. 현진이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로 앉아 있었다.

"현진아..."

나는 각오를 다지고 왔지만 막상 오니까 할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괜찮니...?"

대답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보호자이신가요?"

"아... 저는 현진이 담임선생님인데요. 현진이 상태가 어떤가요?"

"머리쪽이 긁혀서 찢어진 거랑 몸 곳곳에 멍이 들어 있어요."

난 그 말을 듣고는 생각보다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 그럼 퇴원은 얼마나 걸리나요?"

"퇴원은 오늘도 가능한데요. 주기적으로 와서 소독을 해줘야 해요."

난 그 말을 듣고 현진이한테 물었다.

"현진아, 우리집에 갈래?"

현진이는 별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퇴원처리 해드릴게요."

"네."

난 현진이가 조금은 맘을 열었다는 생각을 했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나는 현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진아, 이 방을 편하게 쓰면 돼.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구."

현진이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현진이는 방 안에 들어갔고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어느새 저녁 때가 되었다. 나는 식사를 준비했고 현진이를 불렀다.

"현진아, 밥먹자. 나오렴."

그러나 방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난 문득 겁이 났다. 나쁜 생각이라도 하면 어쩌지?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현진이는 걱정과는 달리 그저 잠을 자고 있었다.

난 현진이를 깨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난 현진이를 깨우기 위해 방으로 갔다.

'아직 자고 있으려나. ..'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현진이는 잠에서 깬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현진아, 일어났는데 왜 말을 안했어? 얼른 나와. 밥먹자."

현진이는 조용히 나를 따라 나왔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난 현진이를 거실로 불렀다.

"현진아, 평소에 집에서 있던 일이나 힘든 것들을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

그러나 현진이는 가만히 있었다.

'아직 많이 힘든가...'

"선생님이 현진이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현진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제대로 도와줄 수 없어."

그러자 조금씩 현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때렸어요... 욕하고... 매일 술을 먹고... 그래서 집에 늦게 들어가면 아빠가 자고 있어서 늦게 들어갔는데, 그 날 일찍 들어가서 아빠가 절 때렸어요..."

현진이의 말끝은 점점 흐려졌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맘이 무거워졌다. 맞지 않기 위해서 집에 늦게 들어갔다는 말이 너무 맘이 아팠다.

"그래... 현진이 잘못이 아니야. 아빠도 현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분명 생각하고 있던 말이 많았는데... 내가 가진 경험으로 제대로 조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말을 하다 보니 말문이 막히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현진이는 아빠가 때리고 욕하고 할 때 기분이 어땠어?"

"너무 슬프고 서러웠어요...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걸 알면서도 도움을 바라는 내가 너무 비참하고 쪽팔렸어요..."

난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대답은 '슬펐다, 아빠가 미웠다'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생각이 있고 상처가 깊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선생님이 현진이를 어떻게 도왔으면 좋겠어?"

나는 맘을 가다듬고 다시 현진이에게 물었다.

"그냥...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요..."

현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나지막히 말했다.

"그래. 선생님이 도와줄게. 앞으로 힘든 거 있으면 선생님에게 다 말해. 한동안 선생님이랑 지내자."

난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고 흐뭇해하며 말을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아침 조회 시간에 나는 애들을 모아두고 말을 했다.

"현진이가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 부모님과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는데 너희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겟어. 알겠지, 애들아?"

"네."

난 반 아이들의 큰 대답을 듣고 '잘 해결됐다'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결코 현진이에게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야, 김현진."

한 무리의 아이가 현진이에게 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너 아빠 한테 맞고 병원 갔냐?"

한 아이가 한 말에 현진이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고,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야, 사실이냐?"

그 말을 들은 주변 애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제 경찰관 왔었고 오늘 쌤이 가족 문제라 했잖아. 그럼 뻔하지 ㅋㅋㅋ"

한 아이의 말에 모두가 웃거나 놀랬다.

현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그저 앉아 있었고 곧 수업종이 쳤다.

"애들아, 앉아라."

애들은 그대로 자리에 갔고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현진이는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현진이를 데리러 갔다.

"현진아, 집에 가자."

그러나 현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멍해져 있었다. 조금 가까워졌다 느꼈지만 또 다른 벽이 생긴 느낌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집에 가는 도중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계속해서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나..?'

현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들어갔다.

"현진아, 이야기 좀 할래?"

난 현진이를 몇 번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누가 괴롭혔나... 아님 학교가 재미가 없나...'

시간이 지나도 현진이는 나오지 않았다.

'내일 이야기 해봐야겠네...'

한편 현진이는 방에 들어 오자마자 엎드렸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아무도 몰랐으면 했는데...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현진이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오갔다.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듯 현진이는 행동했다.

"현진아, 가자."

"네."

'별 일 아닌가...?'

난 괜찮아 보이는 현진이의 모습에 별 생각없이 집을 나섰다.

현진이가 반에 들어서자 마자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가정폭력 당했다는 애지?"

"딱하다."

"말이라도 걸어 볼까?"

'아... 정말 싫다...'

현진이는 그런 관심이 불쾌하고 싫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그날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로 집에 갔다.

"현진아, 오늘도 선생님이랑 이야기할래?"

"아...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나는 현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현진이는 불편하다는 듯이 피해버렸다.

'많이 피곤한가...?'

"그래, 다음에 하자."

"...."

현진이는 방에 들어가서 또다시 생각에 잠긴다.

'학교 가기 싫다...'

'이대로 세상이 망해버리면 좋겠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 날도 현진이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그렇게 한참을 되뇌이다 잠들었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알지 못했고 현진이는 철저히 그러한 모습을 나에게 숨겼다.

그러다 몇 달 후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

"다음 주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으니까 부모님에게 꼭 말씀드리고. 모두 참석 해달라고 말씀드려야 해."

"네."

반 아이들은 모두 별 거 아닌 듯 대답을 했지만 현진이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앉아 있었다.

"야, 쟤는 어쩌냐."

"누구? 김현진?"

"맞네... 쟤 어떻게 하냐..."

"쟤 왜? 뭔 일 있어?"

"아니... 쟤..."

주변에서 현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와줄 부모가 없으면 어쩌냐 ㅋㅋㅋ"

누군가는 일부러 상처주기 위해서

"야... 쟤는 어떻게 해.. 진짜 안됐다.."

누군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슨 일인데? 부모님 없어?"

누군가는 순전히 궁금증으로.

그 어떤 이유로든

현진이에게는 그런 말을 듣는 그 순간이 자신이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맞았던 것보다 더 아팠고 힘들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현진아, 오늘 학교는 어땠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현진이에게 물었다.

"그냥 똑같았어요."

현진이는 평소와 같은 대답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난 아직 현진이와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걸 느끼며 조금 섭섭해하며 방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간 현진이는 생각했다.

'아... 수업듣기 싫다.'

가만히 앉아 있던 현진이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안녕?"

같은 반 반장인 김윤지 였다.

"...?"

"아... 그 주말에 우리 조 영상 제작을 해야 하는데 언제 시간 돼?"

"... 둘 다 상관없어 "

"아... 그래. 일정 나오면 말해줄게."

처음으로 평범한 대화를 하게 된 현진이었다.

'영상... 조... 그런 게 있었나...'

기억을 되새기면서 창문을 바라봤다.

'그냥 안가야지...'

다시 잘려던 찰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현진이니?"

"누구세요?"

"나 김윤지인데, 오늘 1시에 꼭 와야 해. 알지?"

"...응"

현진이는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아.. 가야겟네..'

그렇게 1시 학교 앞 카페에 도착했다.

'어디있지...'

"여기야!"

"안녕..."

"아... 응... 안녕"

어색한 인사를 뒤로하고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거 어때?"

"이게 더 나은데?"

"저걸로 하자."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괜히 나왔다.'

하나도 이해를 못하고 있던 중

"현진아, 넌 어떻게 생각해?"

"응..? 아 나도 저게 좋아."

김윤지였다. 그 뒤로도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이대로 하고 다음에 보자."

"그래. 안녕, 애들아."

"안녕"

"잘가~"

"..."

그뒤로 나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 나오길 좀 잘한 것 같네... 하늘도 이쁘고...'

"다녀왔습니다."

"오늘 잘하고 왔니?"

"네."

현진이는 대답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요새 학교는 어떠니? 내가 요즘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것 같네."

"괜찮아요."

난 요새 신경 쓸 일이 많았기에 현진이를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기에 대화를 자주하지도 못했고 어떤 상황인지도 몰랐다.

"다녀오겠습니다"

여느 날처럼 현진이는 학교에 갔.다 난 청소를 위해 현진이 방에 들어갔다.

'이게 뭐지...?'

휴지통을 치우기 위해 휴지통을 찾았는데, 안에는 붉게 물든 휴지들이 가득했다.

'뭐지... 피인가?'

난 설마 하는 생각에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붉은 피가 굳어있는 커터칼을 발견했다.

'아...'

난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분명 괜찮은 것 같았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눈물도 흘렀다. 이정도까지 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매일 어어땠냐고 무심하게 묻던 내가 너무 싫어졌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현진이를 불렀다.

"현진아, 잠깐만 이야기좀 할래?"

난 충격적이었던 맘을 진정시킨 채로 현진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지..?'

"현진아, 요새 학교생활 어때...?"

"어... 그냥 그래요."

"힘든 일은 없어? 누가 괴롭힌다 거나."

"......"

현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후... 현진아, 내가 오늘 방청소를 하면서 이걸 봤는데... 설명해줄 수 있어?"

내가 커터칼을 꺼내자 현진이는 흠칫하며 놀랐다.

"......"

"왜 말을 안 해..."

"그냥... 좀 힘들어서요..."

"힘들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했어? 말하면 선생님이 듣고 해결해줄 수 있잖아."

"말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또 애들한테 말하고 잘지내라고 말 할 거잖아요. 그거 아무 소용 없고 오히려 저를 힘들게 만들어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마요."

난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무언가로 맞은 듯 띵했다. 분명 돕기 위해 한 내 행동들이 이 아이에게 독이 되었고, 그로 인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

"아... 말을 하지 그랬어... 내ㄱ..."

"말을 하면 뭐가 달라져요. 하나도 안 변해요. 왜 어른들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애들이 행동하고 생각할 거라 생각해요. 어줍잖은 동정은 필요없어요."

현진이는 울컥했는지 말끝을 흐리며 방으로 뛰쳐 들어갔고, 난 그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말없이 지내던 중,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김현진 학생 보호자 되시나요?"

"네. 맞는데 무슨 일인가요?"

"여기 대원병원 응급실인데요. 현진핛..."

난 응급실과 현진이라는 말만 듣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저기 김현진 환자 어디 있나요?"

"저 따라오세요."

"현진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아파했는데 지금 안정제 투여해서 잠든 상태에요. 혹시 최근에 나쁜 일 있었나요?"

"아... 네..."

"애가 많이 힘들어 보여요. 잘 위로하고 도와주세요."

"네..."

난 그말을 듣고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좋은 환경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데리고 온 아이를 너무 힘들게 했다는게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그 뒤로 현진이는 일어났고 현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현진아 우리 잠시 이야기좀 하자..."

"...네"

현진이는 꺼려하는 듯했지만 끝내 대답을 했다.

"현진아, 나는 너를 도울 수 있고 제대로 도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봐. 난 어릴 적 학교폭력 피해자였고 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힘든 시절을 견뎌냈어. 그래서 너에게도 내가 받은 도움과 똑같은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히려 내 섣부른 행동으로 오히려 널 힘들게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해..."

"...."

"하지만 난 여전히 너를 돕고 싶고, 너가 좀 더 나에게 의지해줬으면 해."

조금 뒤 현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처음 저에게 도움을 준 선생님에게 고마웠어요. 처음으로 저를 도와주었고, 저를 위해 노력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사람이 선생님처럼은 아니었어요. 제 아픔을 놀림거리로 만드는 아이도 있었고, 위로랍시고 내뱉는 말들이 저를 더 힘들게 했어요... 그러다보니 애들한테 이 이야기를 한 선생님조차도 원망했어요..."

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 분명 현진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또 상처만 줬구나...'

"하지만 선생님께선 절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을 알기에 탓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렇구나... 내가 미처 너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 그렇지만 앞으로 힘든 일이 있다면 나와 상의 해줄 수 있겠니...?"

"...네."

난 분명 답을 들었지만 마음 어딘가가 불편했다.

다음날, 나는 어린 시절 나를 도와줬던 분을 만나러 갔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무슨 일로 온 거니?"

"아... 다름이아니라"

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 말을 들으시고 생각에 잠기셨다가 말을 시작하셨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너도 맘고생이 심했겠어."

"저보단... 그 애가 더 걱정돼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음... 먼저 방법을 찾기 전에 알아야 될 게 있겠구나."

"그게 뭔가요?"

"너의 경우는 너가 힘들어 해도 너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어. 분명 그 아이보다는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더욱 성장해 있었지."

"그게 큰 차이인가요?"

"그럼. 나뭇가지에 문제가 생기면 가지만 쳐내면 금방 다시 자랄 수 있어. 하지만 그 뿌리에 문제가 생긴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회복시켜야 하지. 그건 분명 큰 차이지."

"아..."

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니 크게 개의치 마렴."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구나. 그리고 그 후에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우리는 도움에 응답하면 되는 것이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꾸나."

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 후론 현진이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현진이 또한 내게 내색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 이 글은 박민성 학생의 허락을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from http://tosomeone.tistory.com/82 by ccl(A) rewrite - 2021-11-05 23:27:52